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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76 * 전봉준,혁명의기록 / 이이화지음 / 생각정원
Date : 2018-01-14
Name : 생활의지혜
Hits : 1581
5. 동학농민혁명은 민중이 양반과 상놈을 타파하고
지배세력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며 주권을 유린하고 이권을 앗아가는
침략 세력을 몰아내려 봉기한 사실을 말한다.

이는 밑으로부터의 변혁 운동이라고도 합니다.
전국에 걸쳐 이 땅의 민중이 한 마음으로 평등과 자주를 외치면서 일어났다가
끝네 큰 희생을 치렸습니다.

그 중심에 정봉준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16. 세미-쌀로 환산해 나라에 바치는 세금
공물-관가에 바치는 특산물
군포 - 장정이 군대 경비로 내는 세금

18. 녹두는 12살이 되어서도 또래 아이에 비해 유난히 키가 작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작다는 뜻으로 녹두라는 별명이 붙었다.

29. 서양옷감을 "질이 좋은 서양의 포목" 이라하여
옥양목이라 하였다.

33. 전봉준은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을 읽고 개혁방안을 묘색했다.

84. 말목장터의 감나무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이 감나무는 해 마다 세종류의 감이 열린다고 한다.

곧 전봉준.송화중.김개남의 감 혹은 전봉준,김도삼,정익서의 감이라고 한다.

뒷날 이 감나무 아래에서 곧잘 여러 행사가 열렸다.
시인은 시의 소재로 삼았고 화가는 그림을, 방송은 영상물을 찍었다.

1994년 동학농민전쟁 100주년을 기념해 지역의 유지들이
돈을 모아 감나무 옆에 정자를 짓고 삼오정이라 이름 붙였다.

삼강오륜의 머리자를 따온 것이다.

그러다가 뜻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웨삼강오륜이냐" 라는
]비난이 일어나 말목정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2003년 여름 태풍에 이 감나무 뿌리가 뽑혀 몸체는
황토재의 기념관에 보관하고 새 감나무를 심어 보호하고 있다.

폭풍에 감나무 뿌리가 뽑힌 것은 무슨 의미로 받아 들일 수 있을 까?
정봉준이 새로 태어난다는 자연의 예언 일까.

88. 죽어도 한 날, 살아도 한 날.

98. 대장 전봉준은 행진 할때 흰 삿갓과 흰 옷 차림에 백마를 타고,
손으로는 염주를 굴리고 입으로는 주문을 외웠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한울림을 모시면 조화가 정해지며 길이 잊지 아니하면 만사를 알게 된다."
동학의 기본 주문을 말한다.

이런 전봉준의 모습은 농민군들에게 신비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113. 전봉준은 일찍이 그의 부하들에게
"나는 신령스러운 부적이 있어 몸을 보호해 준다.
비록 대포 연기가 자욱한 속이나 총알이 비가 오듯 하는 속에서도 다치지 않는다.
너희들 보아라." 라고 말하고는

몰래 탄환 수십개를 소매에 넣어두고 친하고 믿을 만한 사람
십여명에게 비밀을 알려준 뒤 그들 하여금 에워싸고 총을 쏘게 했다.

그러나 실재로는 공포였다
.전봉준이 스스로 포위속에서 벗어나서 소매를 툴툴터니
탄환이 땅에 어지렵게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탄환을 본 무리들은 "장군은 신령스러운 사람" 이라고 말했다.
이런 모습을 본 부하들은 그 부적을 다투어 붙이고 총탄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고 한다.

138. 인류역사에서 평등을 실현하려는 호칭은 1914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난 뒤
"동무"를 사용 한것을 첫사레로 꼽고 있다.

최시형도 포덕을 하면서 동지들끼리 접장이라 부르게 가르쳤다.
그러니 동학과 농민군은 평등의 호칭을 러시아의 사례보다 적어도 20년 앞서 실행에 옮겻던 것이다.

또 맞절은 신분의 차이를 형식부터 없애는 방법이었다.
예전 중국 당나라의 무측천은 남녀의 차별을 없애는

첫 방법으로
남자가와 여자가 절을 할때 대등하게 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
이런 절 형식은 한때 발해에서도 유행을 탄 적이 있다.

239. 전봉준은 죽기 직전에 감회를 담은 시 한수를 읊었다.

때를 만나서는 천지도 모두 힘을 합하더니
운이 가니 영웅도 스스로 어찌하지 못하는구나
백성사랑하는 정의 나 실수 없었어요
나라 위하는 붉은 마음 누가 알아 주리

262. 손병희는 끝내 살아 남아서 일본에 가서 정세를 살피기도 하고
러일전쟁시기에 정치자금을 일본에 보내는 따위의 석연치 않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으나

동학의 정신을 계승해 천도교를 창건했고 3.1운동의 주역이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손병희는 역사의 보상을 받았다.

손병희는 일제강점기에 여러 민족운동을 벌리면서,
자신과 생사를 같이 한다고 맹세한 전봉준에 대해서 이렇쿵저렇쿵 도통 말이 없었다.

왜그렀을까.
어쨌거나 한 지도자는 민중이 도모한 처절한 농민전쟁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렸고
한 지도자는 조선독립을 외친 거대한 만세 시위의 주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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